2023-05-18

온몸으로 그리고 손끝으로 뿌리는 스트릿 아티스트, 지메나 히메네스

세계의 담벼락을 예술로 채우다
드디어 지메나 히메네스(Ximena Jiménez)와의 인터뷰가 성사되었다. 라틴아메리카 타이포그래피와 디자인계에 워낙 잘 알려진 디자이너이자 스트릿 아티스트인지라, 설레는 마음으로 그녀와의 만남을 준비했다. 줌 화면이 켜지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쨍한 청록색으로 물들인 짧은 단발머리와 와인색 티셔츠, 그 위에 검정 유광 패딩을 걸친 채 금방 내린 콜롬비아 커피 한 잔을 들고 있는 힙하디 힙한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녀가 나를 보고 환영의 미소를 짓는 순간, 에너지 넘치는 아우라가 모니터 화면을 꽉 채웠다. 지메나는 지금까지 만났던 디자이너들과는 또 다른 이력을 가졌다. 여러 스포츠 선수로 활동하며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아서인지 카리스마 넘치는 포즈가 남달라 보였다.
지메나 히메네스(Ximena Jiménez) 프로필 사진 ©Ximena Jiménez

지메나 히메네스는 콜롬비아 레터링 디자이너이자 스트릿 아티스트이다. 그녀는 라틴아메리카 타이포그래피계에서 활동을 하며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스트릿 아트와 레터링을 조합했다. 그녀의 작품은 콜롬비아, 미국, 일본, 아르헨티나, 멕시코 거리의 담벼락에 여러 흔적을 남겨왔다. 현재에는 스트릿 아트 기초를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지메나의 디자인 철학을 이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Interview with 지메나 히메네스

서류에 직업란을 채워야 한다면, 본인이 하는 일을 어떻게 적어 넣을 것인가요?

저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현재의 제 정체성은 아티스트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스트릿 아트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통상적인 디자인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Adidas, 프라이드(Pride) 2022 컬렉션을 위한 디자인, 보고타, 콜롬비아, 2022 ©Ximena Jiménez

아티스트님은 전문 레터링과 스트릿 아트에 전념하기 전에, 콜롬비아의 국제 얼티메이트 프리스비(ultimate frizbee) 대회에서 활약할 만큼 훌륭한 운동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혹시 디자인에 전념하게 된 계기를 알 수 있을까요?

저는 6살부터 21살까지 꽤 오랫동안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21살이 되던 해에 부상을 입게 되면서 선수 활동을 그만두고 디자인을 전공하게 되었지요. 저는 걱정 없는 유복한 집의 외동딸로 태어나 굉장히 바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저를 돌보기 귀찮아 했던 부모님 덕분에 무술과 스케이팅, 피아노, 농구, 플루트 등 과외라는 과외는 다 해볼 정도였죠.(웃음) 무술을 배운 뒤에는 전문적으로 농구 훈련을 받기도 했고, 18살 때 얼티메이트 프리스비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2012년에 프로 선수로 이탈리아 월드 챔피언십에 데뷔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무릎에 큰 부상을 입었고, 그 후 수술을 하게 되어 선수 활동을 그만두고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공부한 학교는 그래픽 디자인을 광고와 동일시 하는 경향이 있어서 오히려 이 학문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어요. 심지어 “나는 절대로 광고를 하기 싫다”라는 마음까지 들었어요. 그래서 졸업 이후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음악을 공부하러 아르헨티나로 떠났는데, 거기에서 ‘레터링(lettering)’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습니다.

수제로 그린 재킷 디자인, 스페인 레퍼 C. 탕가나(C. Tangana)가 위스키 광고 캠페인에서 입은 재킷 디자인, 보고타, 콜롬비아, 2022 ©Ximena Jiménez

부상 때문에 좋아하던 운동을 그만뒀다니 유감입니다. 하지만 운동을 오랫동안 하셨다는 이야기는 아티스트님의 디자인 철학을 이해하는 데 무척 도움이 됩니다. 규칙적인 생활과 인내심, 도전 정신 모두 엄격한 선수 훈련의 경험에서 온 것 아닐까요?

정말 그렇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 선수 훈련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은 스스로에게 큰 버팀목이 되었어요. 규칙적인 트레이닝 루틴은 사람에게 육체적인 건강을 넘어 정신적으로도 건강함과 힘을 주지요. 대회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규칙적인 생활과 엄격한 훈련을 하게 됩니다. 운동하는 과정에 몸이 지쳐서 쓰러져 죽을 것만 같은데, 트레이너는 결코 훈련을 멈추지 않지요. 이런 생활을 어릴 때부터 반복하며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고 몸과 정신이 강해지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할 때는 늘 무섭고 긴장되지요. 그러나 두려우면서도 시도를 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그 일을 해내야만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Musingwear, 일본 의류 가을/겨울 컬렉션을 위한 레터링 디자인, 도쿄, 일본, 2021 ©Ximena Jiménez

그렇다면 아티스트님이 아르헨티나에서 시작한 ‘레터링’의 세계가, 바로 두렵지만 용기 내어 도전했던 모험이셨겠군요.

정확합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저는 그래픽 디자인이 적성에 맞지 않아 일렉트로닉(electronic)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2014년에 아르헨티나로 떠났습니다. 당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바에서 종업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이 제 필기체를 보고 마음에 든다며 바의 간판을 그려 달라고 하더군요. 그때 마침 월드컵에서 콜롬비아와 세네갈의 축구시합 경기가 있을 때라, 저는 분필로 “콜롬비아 vs 세네갈(Colombia vs Senegal)” 문구를 간판에 그려 넣었고 사장님은 극찬을 했어요. 그러면서 점차 그 바에 있는 메뉴판도 그리고, 다양한 팻말들도 분필로 쓰기 시작했어요. 이런 작업을 한다고 해서 아르바이트비를 더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때의 경험은 제가 가진 새로운 소질을 발견하고 활용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때부터 주변을 돌아보니 부에노스아이레스 곳곳에 있는 캘리그래피와 레터링을 사용한 간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전에는 왜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그러면서 필레테아도(fileteado)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전통 레터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점점 레터링의 묘미에 빠져들었지요.

Ni Una Menos, 페미니스트 단체 티셔츠 디자인을 위한 레터링, 부카만가, 콜롬비아 ©Ximena Jiménez

결국 다양한 캘리그래피 워크숍과 레터링에 관련된 세미나에 등록을 했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얼마 안 되는 돈 전부를 공부에 투자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만든 작품들을 하나둘씩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일랜드의 한 티셔츠 브랜드에서 제 작품 하나를 사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렇게 제가 디자인한 레터링을 작품을 150불이라는 돈을 받고 처음 팔았어요. 그리고 알레한드로 파울(Alejandro Paul)이라는 아르헨티나 유명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주조소 <수드 티포스(Sud Tipos)> 에서도 연락을 받아, 제가 손으로 디자인한 글씨를 디지털 폰트로 리디자인할 기회도 생겼지요.

Sushi Tour x Hatsu, 포스터 디자인, 메데진, 콜롬비아, 2021 ©Ximena Jiménez

아티스트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마치 큰 어려움 없이 레터링 디자이너로 승승장구하신 느낌이 드는데요, 실제 과정은 그렇지 않았겠지요?

거시적으로 주요 이벤트 위주의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으니 그렇게 들릴 수 있겠네요.(웃음) 절대로 쉬운 과정이 아니었어요. 5년 동안 아르헨티나에서 생활하면서 제 주머니는 넉넉한 적이 없었습니다. 작품 하나가 성공적으로 팔리기 전까지 몇 개월 동안 1페소(아르헨티나 화폐 단위, 한화 약 6원)도 없어서 버스를 타지 못해 걸어 다닐 정도로 간소한 삶을 살았어요. 당시 제 동거인은 저에게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레터링을 포기하고 차라리 다른 직장을 알아 보면 어떻겠냐는 우려의 말을 해주곤 했지요. 이럴 때마다 저는 선수 시절을 떠올리며 “포기를 하는 순간 패배자가 된다”라는 생각으로 힘든 순간들을 버텨냈어요. 운동에서 ‘플랜 B’는 없습니다. 저는 운동을 그만둔 이후로 레터링을 만나기까지, 그만큼 좋아하고 열정을 바칠 수 있는 관심사를 찾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일을 본업으로 삼을 수 있게 될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했어요.

데이트, 외식, 사치 등의 소비를 모두 줄이고 오로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교육을 받고 실습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에 슬럼프가 찾아왔는데, 그때 저는 보다 강하게 제 신념을 밀고 나갔어요. 그러자 소위 말하는 회복탄성력(resiliance)이 생기더군요. 그때부터 새벽같이 일어나서 작업을 하고 여유 시간이 있을 때 셀프 마케팅을 공부하며 SNS 다루는 법도 배웠습니다. 2018년이 되자 독립적인 레터링 디자이너로 라틴아메리카에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저에게 프로젝트를 의뢰하는 클라이언트들도 하나둘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고군분투를 하셨네요. 그러면 왜 콜롬비아로 귀국한 뒤 ‘스트릿 아트(Street Art)’로 활동 분야를 전환하셨나요?

사실 저는 아르헨티나로 가기 전부터 벽화를 하고 싶었어요. 18살 무렵이었죠. 저는 그 당시 콜롬비아에서 그라피티를 하고 싶어서 페이스북을 통해 “벽화를 그리고 싶은데, 혹시 집에 빈 벽이 있는 사람이 계시면 실습을 위해 빌려 주세요”하고 구인 포스팅을 올리곤 했지요. 그때 마침 한 친구가 본인 방의 빈 벽을 칠해달라고 말했고, 저는 페인트를 물에 희석해서 써야 하는지도 모른 채 둔탁하고 지저분한 임파스토(회화에서 두껍께 칠하는 방식) 작품을 남겨두고 왔어요.(웃음)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모습, 2023 ©Ximena Jiménez

레터링을 공부했던 아르헨티나를 떠나 콜롬비아로 돌아가서 제 고등학교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아르헨티나에서 습득한 레터링과 캘리그래피 지식을 벽화와 접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아르헨티나에서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프로 그라피티 아티스트인 옛 연인을 만났는데, 벽화를 배우고 싶다는 제 의향을 밝히자 그녀는 저를 환영해 줬어요. 물론 교수법을 모르는 그녀의 교육은 매우 불규칙적이었고 체계가 잡혀있지 않아 “대충대충” 시범적으로 벽화를 그리면서 보여주는 방식이었지요.(웃음) 스프레이도 제대로 잡을 줄 몰랐던 저는 레터링을 처음 배울 때처럼 다시 한번 좌절했지만, 실습을 해 나가면서 차츰 기술에 익숙해졌습니다.

문화센터 식당 파사드, 스트릿 아트, 보고타, 콜롬비아, 2022 ©Ximena Jiménez

스트릿 아트로 전환한 것이 아니라 레터링을 할 수 있는 매체를 확장시킨 셈이네요. 그런데 철두철미한 설계를 바탕으로 시간을 들여 보완하는 레터링과는 달리, 그라피티는 빠르고 즉흥적이며 단 한 번의 손놀림으로 선을 완성해야 하지요. 서로 상충되는 기법이 적용되지 않나요?

둘에 대한 이해가 정확하시네요. 맞습니다. 그 부분이 바로 제가 넘어야 했던 큰 산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페인트 분무기의 특성상, 사전에 종이에 그려가며 구상했던 글자처럼 정확한 선이 그려지지 않아 낭패를 보곤 했습니다. 아무리 시도를 해도 그리드를 기반으로 그린 글자처럼 자간과 글자 높이, 그리고자 하는 문장의 폭이 왜곡된 부분이 자꾸 눈에 밟혀서 처음에는 그라피티 전문가 친구들의 손을 빌려 수정을 하곤 했어요. 이렇게 남의 손을 빌리는 것을 그라피티 전문 용어로는 “마노 네그라(mano negra)”, 즉 “검은 손”이라고 부릅니다. 결코 바람직하진 않은 방법이죠.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벽의 규모가 커지면서, 저는 완벽주의 성향을 좀 내려놨어요. 종이에 그릴 때와는 달리, 6층 높이의 벽면에 그리는 그라피티는 저에게 생각지도 못한 컬래버레이션의 즐거움과 높은 자유도를 선사했어요. 특히 저처럼 금방 싫증을 느끼는 사람에게 있어, 벽화는 지루할 새 없이 새로운 프로젝트와 탐색을 해볼 만한 도전적인 모험을 제공했지요.

TODES 벽화, 지원을 받아 진행한 LGBTQI+ 커뮤니티를 위한 개인 프로젝트, 2022 ©Ximena Jiménez

그라피티의 경우, 비밀스러운 “거리 낙서”로 일종의 비합법적인 예술 행위로 알려져 있지요. 한국에서 이런 행위는 공공장소 훼손으로 처벌 당할 수도 있는데, 콜롬비아의 경우는 어떤가요?

콜롬비아의 보고타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그라피티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자유도가 높고 그라피티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요. 물론 지역마다 달라요. 칸델라리아(Candelaria)와 같은 전통적인 지역은 도시 관경을 보호하고 있기에 정부 허가 없이는 그라피티를 할 수 없어요. 그리고 불법으로 담벼락에 그라피티를 남겨놓는다 한들, 그 다음날 덮어버리기 일쑤이니 의미가 없지요.

저는 제 친구들과 함께 변두리에 방치된 벽을 찾아 야간에 그라피티를 할 때도 있고, 합법적으로 그릴 수 있는 벽을 찾아 스트릿 아트를 할 때도 있어요. 지역들을 돌아다니다가 좋은 담벼락을 찾으면 그 사진을 찍고, 만약 주택이나 가게의 일부일 경우 제 포트폴리오를 가져가서 주인에게 “이런 그림과 문구를 벽에 그리고 싶은데 괜찮겠냐”라고 양해를 구합니다.

어떨 때는 제가 그리고 싶은 그림과는 달리, 가게 주인들이 본인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그들에게 작품의 가격과 시간, 그리고 이 그림을 그 누구도 손상시키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라피티 아티스트들 대부분이 서로 알고 지내기 때문에, 암묵적인 룰을 지키며 함부로 어떤 작품을 덮어버리거나 훼손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지요.

인테리어 벽화 디자인, 보고타, 콜롬비아 ©Ximena Jiménez

스트릿 아트를 의뢰받았을 때, 준비와 작업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먼저 벽화를 의뢰하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림과 벽의 사진, 벽의 사이즈 정보, 그리고 스프레이의 색과 제공할 수 있는 수량을 알려줘요. 가까운 곳이면 직접 가보기도 하고 거리가 다소 멀 경우, 사진을 기반으로 디자인을 구상하지요. 그 사진 위에 그들이 원하는 문장이나 단어를 그려서 클라이언트와 상의를 하고 보완하여 스케치를 완성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작품들을 소장하기 위해 사진가나 드론(drone) 기사를 고용해서 여러 각도로 작품을 촬영하고 정리해 보관합니다.

스트릿 아트, 개인 프로젝트, 보고타, 콜롬비아, 2022 ©Ximena Jiménez

아티스트님의 스트릿 아트는 일본, 멕시코, 아르헨티나, 미국의 담벼락을 장식하고 있어요. 또 나아가 다양한 국제 브랜드의 작품도 맡으셨지요. 혹시 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을까요?

코로나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그라피티 페스티벌에 저와 제 친구가 초대를 받았는데, 주최 측의 부주의로 인해 저희가 구상했던 모든 계획이 망가졌어요. 감정적으로 격해져 있던 친구는 페스티벌에서 아무런 소득도 없이 콜롬비아로 돌아가기 싫다며, 예정에 없었던 7층짜리 벽돌 건물의 벽면을 수배해왔죠. 친구는 자신이 일러스트를 담당할 테니, 저에게는 “EGO”(자만)이라는 글자를 그려 달라고 했어요. 사실 벽돌 표면은 그림의 좌표로 삼을 수 있는 그리드(grid)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만일 이 위에 실수를 한다면 흰색이나 검은 칠로 덮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제가 구현하고자 하는 글씨체는 비스듬한 이탤릭체였기 때문에 그리드는 별 쓸모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벽의 면적이 너무 커서 종이에 그린 스케치와 실제로 완성할 글자 하나 하나의 폭과 간격을 눈으로 계산할 수밖에 없었어요. 또한 워낙 큰 벽이라 사다리를 사용할 수도 없었지요. 그래서 저는 난생 처음으로 크레인을 타고 벽에 바짝 붙어 밑그림을 그리고, 다시 크레인을 뒤로 물려서 넓은 시야로 글자의 간격을 조절해 가는 것을 반복하며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이런 규모의 작품을 한 번 해내니 웬만한 작업은 모두 소화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더군요. 정말 유익한 경험이었습니다.

지메나 히메네스(Ximena Jiménez) 프로필 사진 ©Ximena Jiménez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감사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 제게 관심을 가져 주시고 제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셔서요. 일본은 가봤으나 한국은 아직 방문하지 못했는데, 가까운 미래에 예술과 디자인 교류의 기회로 아름답고 디자인 문화가 풍부한 여러분의 나라를 직접 돌아보고 싶네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엘리아나 객원 필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Ximena Jimén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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