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9

예술과 자연이 잇닿는 백색의 미술관, 솔올미술관 ①

: file no.1 : ‘미술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솔올미술관 외관 전경 ©솔올미술관

Briefing

솔올미술관

소나무가 많은 고을이므로 ‘솔올’이라 불렸던 강릉시 교동 일대. 그 땅에 옛 이름을 내건 미술관이 개관했다. 2월 14일 솔올미술관이 정식으로 문을 연 것. 미술관은 교동7공원,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았다. 진입로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오르막을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 희고 매끈한 미술관이 보이기 시작한다.

솔올미술관 외관 전경 ©솔올미술관

오랜 준비를 거쳐 강릉에 설립된 이 미술관은 무엇으로 채워질까? 김석모 솔올미술관장의 대답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미술관을 준비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세 가지가 있습니다. ‘미술관과 강릉이라는 지역이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아름다운 건축과 미술을 어떻게 맥락적으로 연결할 것인가’ 그리고 ‘미술관을 통해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을 어떻게 이을 것인가’가 바로 그것이죠.”

유리창 밖으로 풍경이 비친다.

실제로 솔올미술관의 면면을 이해하는 데 가장 주요한 키워드는 ‘연결’일지도 모른다. 예술과 강릉, 건축과 미술, 한국미술과 세계미술, 자연과 사람처럼 서로 다른 요소가 다양하게 교차하고 이어지면서 미술관의 성격을 빚어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각 요소들이 공간 속에서 어떻게 어우러지며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지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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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이야기가 피어오르는 곳

지난해 강원 지역 중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 곳은 약 3,427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 강릉*. 바다와 산이 가깝고 먹거리와 볼거리가 모두 풍부해 여행자가 바쁜 도시이지만, 다른 즐길 거리와 비교해 미술을 향유할 공간은 다소 한정된 실정이었다. 강릉에 생기는 미술관이 그 입지만으로도 지역과 미술신에 중요한 의의를 갖는 이유이고, 솔올미술관이 현재의 성격을 띠게 된 배경이다. 

 

“강릉이라는 도시에 미술관이 생긴다면 어떤 미술관이어야 할까요? 강릉은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관광도시입니다. 세계의 유명한 관광도시, 이를테면 프랑스 파리나 영국 런던을 떠올려 보세요. 도시 자체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언제 방문해도 만족스러운 문화 예술 공간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죠. 도시의 성격을 만드는 데 예술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미술관의 성격을 계획해 나갔습니다.”

* 출처 강원관광재단 「강원특별자치도 관광 동향 분석」 2023.12.
〈제9회 밀라노 트리엔날레를 위한 네온 구조〉 (Struttura al neon per la IX Triennale di Milano), 1951_2024 ©솔올미술관

학문적으로 깊이 연구한, 정제된 전시 콘텐츠를 갖추는 일에 집중하는 건 그래서다. 솔올미술관은 현재 세계 미술사의 흐름에서 중요한 해외 작가를 소개하는 한편, 한국 현대미술 거장을 함께 조명하고 있다. 전시 프로젝트 시리즈 ‘In Dialog’가 그 일환으로 진행된다. In Dialog는 세계 현대미술의 맥락을 살피는 기획전과 연결한 한국 현대미술 전시 프로젝트다. 해외 작가 기획전과 한국 작가 전시를 엮음으로써 흥미로운 미학적 담론을 형성하겠다는 의도다.

〈루치오 폰타나: 공간·기다림〉 전이 진행되는 전시실 1
〈제4회 카셀 도큐멘타를 위한 공간 환경〉 (Ambiente spaziale in Documenta 4 a Kassel) 근접 촬영 컷, 1968/2024

첫 기획전 〈루치오 폰타나: 공간·기다림〉으로 현대미술의 거장인 이탈리아 작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를 선보이는 지금, In Dialog 프로젝트로는 〈In Dialog: 곽인식〉 전을 열어 일본에서 활동한 한국인 미술가 곽인식의 작품을 소개한다. 두 작가가 현실에서 만난 적은 없으며 두 작가의 지향이 같은 것도 아니지만, 두 작가의 작품을 나란히 관람하면 분명히 어떠한 이야기가 떠오르리라는 것. “이런 시도를 통해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을 둘러싼 담론이 만들어지기를 꿈꿉니다. 또 두 작가의 작품을 보는 우리들도 어떤 대화를 만들어내길 바라고요.”

〈In Dialog: 곽인식〉 전이 열리는 전시실 3 ©솔올미술관
〈In Dialog: 곽인식〉 전이 열리는 전시실 3 ©솔올미술관

그렇다면 이 미술관은 어떤 기준으로 전시를 구상하는 걸까? 김석모 관장은 고려해야 할 현실적 요소가 많기 때문에 확고한 기준을 세우지는 않았다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생각은 있다고 했다. “제가 관장으로 일하는 동안은 우리 삶에 접점이 있는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려 합니다. 요즘 AI 예술이나 몰입형 미술 등이 화제지요. 기술 발달이 예술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현상의 미술사적 근원을 따라가면 루치오 폰타나가 있습니다. 일상적인 이슈, 한국미술 등 우리와 가까운 것을 반추할 수 있는 세계의 작품은 무엇일지 떠올리고, 현실적인 요소를 조율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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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머금는 미술관

“미술관 건축은 미술관이 담아내는 작품과 맥락이 닿아 있어야 하고, 도시에 소통을 일으켜야 해요.” 솔올미술관장이자 미술사학자로서 전 세계의 이름난 미술관을 여럿 경험해 온 김석모 관장이 말했다. 그런 면에서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의 건축 디자인과 철학을 계승하는 마이어 파트너스(Meier Partners)는 미술관의 든든한 협력자였다. 리처드 마이어는 은퇴 전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1995), 로스앤젤레스 게티 센터(1997) 등 이제 랜드마크가 된 10곳의 미술관을 설계한 바 있다.

 

* 리처드 마이어 1984년 저명한 건축상인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거머쥐고, 애틀랜타 하이 미술관(1983),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1995), 로스앤젤레스 게티 센터(1997) 등 10곳의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그는 2018년 ‘미투’ 운동 당시 이뤄진 성폭력 고발로 불명예 은퇴했다. 그의 은퇴 후 2021년 회사는 ‘리처드 마이어 & 파트너스 아키텍츠’라는 사명을 ‘마이어 파트너스’로 변경했음을 알렸다.

“솔올미술관은 날씨가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근사해요.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생생하게 느껴지죠.” 취재를 하는 몇 시간 새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방문한 날 오전엔 구름이 잔뜩 끼어 흐렸다. 미술관은 비를 품은 구름처럼 옅은 회색빛인 채 가만했다. 정오가 지나자 거짓말처럼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쏟아졌는데, 다시 나가서 본 미술관의 인상이 사뭇 달랐다. 체에 거른 듯 곱게 내리쬐는 빛을 미술관이 고스란히 머금었다. 외벽엔 흰색이 두드러졌고, 빛이 스미는 실내 역시 오전보다 활기 있고 역동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전면에서 바라본 미술관

이는 리처드 마이어의 백색 예찬을 이어받은 마이어 파트너스의 설계에서 기인한다. “백색은 모든 색이다. 어디에나, 당신이 보는 모든 곳에 있다. (White is all colors. It’s everywhere. Everywhere you look.)” 리처드 마이어의 생각 중 하나다. 백색은 빛을 받아들이고 자연을 반영하는 색이라 여겼던 그는 흰색 건축물을 여럿 설계해 ‘백색 건축의 대가’라 불리기도 한다. 솔올미술관 역시 백색으로 마감돼 예술을 위한 중립적인 배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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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으로 시선이 흐르도록 한 설계

건물은 중앙의 마당을 중심으로 세 개의 파빌리온이 감싸는 형태다. 대지의 가운데 마당을 두고 건물 혹은 담장으로 둘러싸는 한옥의 일반적 구성 양식을 반영한 것. 세 개의 파빌리온은 각각 캔틸레버(cantilever)* 구조로 지어진 북쪽 윙(Wing), 직관적인 구조의 큐브(Cube), 주 출입구가 있는 투명한 로비 공간으로 구성됐다. 한옥의 마당이 계절을 느끼거나 야외활동을 하는 장소이듯, 미술관의 마당도 야외 전시나 시민을 위한 행사 등을 진행하는 공간으로서 기능할 것이라고.

* 캔틸레버 한쪽 끝은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의 보로, 수평으로 뻗어 있다.
정면에 보이는 부분이 캔틸레버 구조의 북쪽 윙(Wing) 전시실 쪽이다. ⓒ솔올미술관
중앙에 자리한 예술의 마당을 세 개의 파빌리온이 감싼 구조다.

마이어 파트너스의 연덕호 파트너는 솔올미술관 건축에 대해 “외부와 내부, 또 건축물과 주변 경관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을 담아내려 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술관을 거닐다 보면 창밖 풍경이 또 다른 작품이 되는 순간을 마주하거나 자신도 모르는 새 숲으로 향하는 길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시퀀스는 마이어 파트너스가 구현하고자 의도한 것이다.

유리창은 뷰 파인더이자 액자가 되기도 한다.
수유실과 엘리베이터, 휠체어·유아차 경사로 등을 갖췄다.

그러한 시퀀스를 만드는 동시에 예술 작품을 관람하는 공간이라는 정체성은 단호히 지켰다. 미술관을 찾은 이들은 내부를 걷는 동안 자연스럽게 밖을 바라볼 수 있지만, 전시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작품에만 몰입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실내 주요 동선을 밖으로 향하게 하되, 전시실은 최대한 내부 지향적으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 성격에 맞춰 전시실의 분위기도 달리할 수 있도록 채광을 조절하는 롤러쉐이드와 같은 장치를 창마다 정밀하게 배치했다.

루치오 폰타나 〈붉은 빛의 공간 환경〉 (Ambiente spaziale a luce rossa) 근접 촬영 컷, 1967/2024 전시실 내 채광을 조절해 설치 작품에 몰입하도록 했다.
루치오 폰타나 〈붉은 빛의 공간 환경〉 (Ambiente spaziale a luce rossa) 근접 촬영 컷, 1967/2024
루치오 폰타나 〈네온이 있는 공간 환경〉 (Ambiente spaziale con neon) 근접 촬영 컷, 1967/2024
창밖으로 미술관 뒤에 자리 잡은 공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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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올미술관이 꿈꾸는 미술관의 시간

각계 전문가가 오랜 시간 공들여 문을 열었으나 미술관은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안고 있다. 미술관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미술관은 강릉시 소유 부지에 아파트 시행사가 건립해 기부채납하는 방식으로 설립됐다.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이 올해 8월까지 위탁운영을 맡지만, 그 후 강릉시 소유가 되며 운영도 강릉시가 담당한다. 강릉시는 시립미술관으로 운영하겠다는 입장 외엔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다. 김석모 관장 역시 미술관을 향한 애정에서 비롯한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다. “시가 어떤 미술관으로 운영하겠다는 청사진을 공유하면,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협력할 생각이에요. 일상의 시간과는 좀 다르게 흘러가는 ‘미술관의 시간’을 경험하는 공간이라는 방향성이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어요.”

김석모 솔올미술관장

그 의도에 따라 지금 솔올미술관 전시실에서는 사진을 촬영할 수 없다. 신고 온 신발을 벗고 들어서야 하는 공간도 있다. “불편하실 겁니다. 그렇지만 미술관이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한다면 기꺼이 새로운 경험을 해보려는 분도 많을 거라고 믿어요.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미술이 남는 경험을 말이죠.” 관람하는 데 제약은 존재하지만, 없는 것도 있다. 현재 전시실에는 작품과 관람객 사이를 띄우는 바리케이드가 눈에 띄지 않는다. 관람객은 작품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거나 그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솔올미술관이 그리는 미술관의 시간은 그런 것이다.

미술관의 형태를 닮은 그림자가 졌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김유영 기자

사진 표기식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솔올미술관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매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예술과 자연이 잇닿는 백색의 미술관, 솔올미술관

▶ : file no.1 : ‘미술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 file no.2 : 마이어 파트너스가 흰 면과 빛으로 만든 것

      : file no.3 : 기획과 건축을 둘러싼 비하인드 스토리

프로젝트
[Post-It] 솔올미술관
장소
솔올미술관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원대로 45
시간
하절기(5월~10월) 오전 10시-오후 7시
동절기(11월~4월) 오전 10시-오후 6시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무료입장(현장구매만 가능)

*예약제 운영
기획자/디렉터
MI 디자인 및 가이드라인 개발 | 헤이조(Hey Joe), 전시 기획 |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KoRICA), 건축 디자인 | 마이어 파트너스(Meier Partners), 건축 디자인 참여자 | 연덕호 (Dukho Yeon), 기예르모 무르시아 (Guillermo Murcia), 오샤론 (Sharon Oh), 최형규 (Hyunggyu Choi), 정유화 (Yuhwa Jeong), 아베 테츠히토 (Tetsuhito Abe), 카와이 준 (Jun Kawai), 시공사 | 아시아종합건설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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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자연이 잇닿는 백색의 미술관, 솔올미술관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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